글로 그림을 그리는 편지 - 정 정 예 -
오늘 하늘은 커다랗게 청색 보자기 곱게 펼쳐놓고 흰 목화솜 꽃을
피우고 있어.
나는 햇살 받은 숲 속이 눈 부셔서 실눈을 뜬 채 반짝이는 곳을 바
라보고 있어.
나풀거리는 나무 이파리가 물고기 비늘같이 펄떡 거리고
무한 창공을 솟아오르는 새들의 깃털에 윤기가 흘러 자유롭게 보
여.
초록 숲이 숱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지.
노랑과 흰색 인동초 꽃이 한 줄기에 줄지어 피어나서 나비가 사뿐
히 내려앉고 꿀벌들의 힘찬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어.
땅을 몇 평쯤 사려는지 자벌레는 제 몸을 반으로 접었다 폈다
한 뼘씩 두 뼘씩 땅을 제면서 기어가고
길 건너 풀 섶엔 노란 금계국 꽃이 지천이야.
바람결 따라 몸 흔들며 파도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지.
금계국 꽃이 물결로 일렁일 때마다 노란 향기가 짙게 날아온단다.
농익은 붉은 장밋빛 노을이 앞산으로 넘어가고 난 뒤 무수히 많은
보석으로 박힌 별들의 쏟아짐과 별똥별들은 은빛으로 획을 긋고
갔어.
가로등 불빛 먼 산속은 낯선 도시의 불빛을 밀어내고 반딧불이 꽁
지에 성냥불을 켰다 껐다 축제의 장이 열렸어.
앞을 볼 수 없는 너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세상의 소리들은
다 들을 수 있지만
팔레트에 물감 풀어서 확 뿌린 저 밖의 광경들을 볼 수가 없잖아.
아, 그렇지 이 숲 속의 보태니컬한 향수는 맡을 수 있겠구나!
숨을 깊이 들여 마셔봐.
숲의 향기가 가슴 깊숙이 전달 될 거야.
답답한 마음에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라 믿어.
나는 글로써 너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어.
너의 손은 눈이 되고 손으로 더듬어가는 세상에서
코와 귀로 열어가는 새로운 세상과 잘 사귀어 갔으면 좋겠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때까지 우리 그렇게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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