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 정 정 예 -
한때는 바람이 머물던 곳이고
구름이 잠시 쉬어가던 곳이고
새들이 날아와서 놀던 곳입니다.
낮에는 그 우듬지에 투명한 햇살 한 조각이 흐트러지고
밤에는 달과 별이 오누이처럼 걸터앉던 곳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거친 세상과 함께 하였
습니다.
지금은 밑동이 바투 잘려나가 나이테만 덩그러니 주저앉아 숨고르
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나무의 나이테를 세어보았습니다.
하나, 둘, 셋......열다섯 살이에요.
숲에 있는 나무가 빽빽하다 하여 간벌을 하였다고 합니다.
베어져 버린 나무는 그 몫을 다하였다고 고마워하려나요?
미처 챙겨가지 못한 아쉬움은 거실 난로에서 시뻘건 불꽃으로 타
오르며
아, 뜨거운 불꽃이여! 타오르는 나의 영혼의 불꽃이여!
불꽃은 다 사그라들어도 바람의 등에는 업혀가지 않아요.
나무의 영혼은 나무가 살던 숲속으로 저 혼자서 걸어가고 있습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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