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에서 - 정 정 예 -
눈부시게 피어났던 벚꽃은 하르르 꽃비가 되어 내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아스라이 매달려있던 꽃들이 저항 없이 땅바닥
으로 주저앉는다. 바람이 분다. 꽃바람이 분다. 연분홍 꽃가루가 이
리저리 몰려 굴러다니다가 한 모퉁이에 멈추어 선다. 하늘은 파랗
고 흰 구름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다.
한낮 도로위에서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춤추듯이 걸었다. 내 몸무게
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뿐한 걸음이 깃털같이 가벼워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이따금씩 자동차가 스쳐지나갈 때 웅크려 있던 꽃
가루들이 자동차 바퀴를 따라 빠르게 굴러가다가 제풀에 지쳐 곤
두박질치듯 쓰러졌다. 쏟아져 내리는 꽃비에 마음을 적시고 걸었
다. 그렇게 한참을 춤추며 걸었다.
그러나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그 길위에서 나는 피할 수 없는 어떤
광경과 마주쳐야만 했다. 도로 위에서 로드킬 당한 고라니였다. 언
제부터 그랬었는지 꽃잎이 고라니 몸을 덮고 있었다. 상처는 보이
지 않고 가지런히 쭉 뻗은 두 다리가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폴짝 숲
속으로 뛰어갈 것만 같았다. 소리 없이 내리는 꽃비가 고라니 죽음
을 지우고 있었다. 고라니 죽음은 슬픈데, 슬픔 위에 반짝이는 꽃가
루가 떨어져 꽃 이불을 덮었다. 꽃비는 아름다운데 슬픈 고라니의
죽음이...... 아, 슬픔과 아름다움은 같은 것일까. 하늘은 파랗고 흰
구름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이 모든 것들이 버무려지고 있었다. 눈
물과 웃음을 동시에 어디에 배치해야 하나 멍하게 서서 두 눈 꼭
감고 파란 하늘에 얼굴을 마구 문질러댔다. 삶이란 죽음이란 아!
아름다운 이 꽃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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